세월호, 우리의 아이들이다
신다인 논설위원

형체를 제대로 알아볼 수 없는 순간에서부터 생명이라는 하나의 사실만으로 그 생명의 마음을 듣고 이해하려 노력하며 세상에서 제대로 삶이 이어질 수 있도록 전전긍긍했다.
말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놓치지 않도록 그 입장에서 생각하고 느끼는 세월을 보내며 아이의 희로애락은 고스란히 엄마의 희로애락이 되었다.
그 마음을 알고 있는 세상의 엄마들은 배 안에 갇힌 아이들의 아픔이 하나같이 내 자식의 아픔으로 감정이입이 된다. 추위와 어둠과 배고픔 속에서 쉼 없이 엄마를 부르며 두려움에 울었을 그 아이들의 눈물이 가슴에 박혀 숨이 멎을 것 같은 그 심정을.
사이코패스가 아닌 이상, 적어도 타인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고 사람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것이 또한 사람이다.
전형적인 권위주의적 리더십아래서 우왕좌왕하며 면책에만 급급하고 있는 한편과 특보여야 할 사고 현장과 사실을 제대로 취재하여 국민에게 알리지 않고, 기자정신마저 상실한 채 목소리가 필요한 피해자 가족의 입을 틀어막는 기레기(기자 쓰레기)
오죽하면 피해자 가족들이 외신과 몇몇 인터넷언론 기자들에게만 인터뷰를 하고 청와대를 직접 찾아가 이야기를 하려고 했을까! 국민과 국가를 제외한 그들만의 안보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몇몇만의 대한민국은 미래가 없어 보인다.
국가와 국민의 안전 보장, 즉 안보를 입에 달고 살면서도 도처에 도사린 위험에 불안해야 하고 진도해상 세월호와 같은 사고가 발생하면 구조가 될 것이라는 희망보다는 죽음을 준비하는 편이 희망고문에서라도 벗어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는 현실은 비극이다.
오늘은 남의 일이지만, 내일은 나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잊으면 그뿐일까?
의전용 의자에 앉아 라면을 먹는 자, 피해자 가족들이 몇 시간을 매달려도 동원되지 못했던 고속정을 타고 사고 현장을 둘러보는 자,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자, 폭탄주 술판을 벌인 자, 자신의 행차를 알려 공치사하려는 자, 피해자 가족들 틈에 숨어 채증하는 사복경찰, 그냥 놀러 왔다는 자, 남의 공 가로채기 위해서 홍보에만 열을 올리는 어느 단체, 사람 목숨 앞에 거짓말을 일삼는 자, 흥분할 수 밖에 없는 피해자 가족들에게 색깔론을 들이밀며 선동자로 말하는 자, 자신의 일을 남의 일처럼 말하는 자 등.
329명. 생때 같은 우리 아이들을 수장시키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타인의 아픔을 함께 할 수 없는 자가 어떻게 연대와 국민과 함께하는 미래의 가치를 말할 수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을 피해서 어디까지 갈 수 있겠는가? 차마 대한민국을 등지지 못한 이유가 ‘우리’이기를, 내 자식과 남의 자식의 구분 없이 우리의 아이들이 살고 있고 또한 살아갈 것이라는 이유로 찾아주면 좋겠다.
비행기나 배나 교통수단을 갈아 탈 때마다 이제는 이런 것들을 타도 안전하냐고 묻는 아이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아득하지만, 그래도 가슴 터지는 오늘을 기억하고 방법을 찾아 움직일 당신이, 바로 당신이 우리의 희망임을, 깨어 생각하고 함께 행동하여 변화를 만들어 낼 우리가 유일한 희망임을 기억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