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공천제 폐지가 ‘정치쇄신’의 시작이다
허 훈 (논설주간/대진대 행정학과 교수)

지난해 대통령선거에서 후보들이 한목소리를 낸 공약이 있다. 기초의원.자치단체장에 대한 정당공천제 폐지이다.
2012년 11월 6일 가장 먼저 새누리당 박근혜후보가 정치쇄신공약의 하나로 발표했다. 11월15일에는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새정치공동선언문을 발표하면서 기초의회의원의 공천폐지를 약속했고, 선거일을 코앞에 둔 12월9일에는 기초단체장까지도 정당공천폐지 대상으로 천명했다.
새 정치를 하는데 왜 기초의원 및 기초자치단체장의 정당공천제 폐지가 필요할까? 한마디로 말해서 정당공천제가 지방자치를 실종시키는 원인이고, 그로 인해 정치자체가 국민들로부터 지탄받는다는 데 있다. 지방자치는 지역에서 발생하는 과제를 주민에 의해, 주민을 위해, 주민이 풀어가는 정치시스템이다.
지방자치를 잘하는 나라들이 선진국이 됐고, 앞으로도 그럴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Alvin Toffler(1991)도 “실질적인 지방분권이 없이는 정부가 적절한 판단을 내리고 질서를 획득하여 능률적인 행정을 할 가능성은 없다”고 설파하기도 했다.
선진국의 정당공천제는 회비를 내는 진성당원들이 지방선거에 나갈 대표를 뽑고, 이들을 정당의 대표로 출전시키는 제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의가 차곡차곡 쌓여 각 지역의 문제가 풀리고, 그 결과로 국가의 정치행정시스템이 작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정당공천제는 국회의원이 지역선거에 나갈 후보를 선택하고 중앙당이 이들을 선정하여 지방선거에 내보낸다. 주민과 후보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국회의원들에게 누가 충성을 하느냐가 관건이 된다.
안00라는 국회의원이 지방의원들을 모아놓고 자신의 지시를 이행하지 못했다고 욕설을 해댈 정도가 됐다. 당시 이 욕설을 들은 지방의원들은 ‘모멸감을 느꼈다’고 분개했지만, 2014년 선거에서 공천을 받지 못할까봐 제대로 항의도 못하고 있다.
이러다보니 지방선출직이 국회의원의 사병화되어 정치계급화현상이 나타나고, 지방자치가 중앙정치의 예속화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뿐인가 공천을 둘러싸고 막대한 공천헌금이 오가기도 한다. 지방의회운영과정에서도 문제가 불거져 나온다.
국회의원의 지시에 의해서 의장, 상임위원장이 정해지고, 공천권을 쥔 국회의원의 가족잔치에 심부름을 하는 지방의원과 선출직 후보들이 수두룩하다. 그러니 000시의회의장은 ‘우리는 국회의원의 노예나 다름없다’고 고백했다.
지방행정에도 깊숙이 관여한다. 각종 사업이권에 국회의원이 관여해서 사업체를 지정해주기도 하는 국회의원들이 드러나기도 했다.
문제는 지방자치의 왜곡에 그치지 않는다. 국민들이 정치 그 자체에 대해 혐오증을 낳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국회의원들이 명분상 공식석상에서는 폐지하고자 하고, 속으로는 자신의 잇속을 위해 공천권을 챙기고 있는 현상이 결국 국민들로 하여금 그들을 믿지 못하게 한다. 그 결과 선거 때마다 부동층이 늘어나서 정당의 기반은 약해지고, 국회의원들에 대한 존경심도 없어진지 오래다.
과연 국민들의 여망을 담아 정책과 법을 만드는 것이 꼭 국회여야 하느냐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국민의 직접참정권을 보장하는 시민원탁회의니, 전자민주주의 등에 기대가 더 크기도 하다. 대의민주주의의 대안을 찾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구태정치에 염증을 느끼는 국민들이 그리는 새 정치의 모습 중의 하나이고, 안철수에 대한 열광도 그런 과정에서 나왔다.
그러므로 대선이 끝났다고, 꼼수부리지 말고 이미 약속한 대로 정당공천제 폐지할 일이다. 걱정스러운 것은 여야의 요즈음 태도이다. 새누리당은 이번 4.24보선에서 조건부 무공천을 들고 나오긴 했으나, 앞으로 야당이 공천하면 우리라고 안할 수 있나 하는 염치없는 소리가 나온다.
야당은 겉으로는 폐지를 논했으면서도 이번 보선에서도 정당공천을 하는 후안무치한 태도를 보였다. 지방선출직에 대한 지배권을 놓기가 그렇게도 두려운가? 그렇다면, 국민들은 정당정치를 불신하고, 직접민주주의와 근린민주주의를 통해 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