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읊어 주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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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읊어 주던 사람
  • 유서원
  • 승인 2012.08.02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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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서 원 도예가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중 략.......................
세상에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깊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마종기 시인의 '우화의 강물' 을 나직이 읊어 주던 사람, 그는 수목원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자연 상태,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 등 숲을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숲 해설사' 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해질녘 작업실 주변에 수북이 자란 풀을 뽑아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호미를 찾아 들었다. 풀 속에는 작년에 씨가 떨어져서 자라고 있는 국화며 봉선화 꽃나무들도 함께 자라고 있었다. 잡초라고 생각되는 것은 뽑아내고 꽃나무라고 알고 있는 것은 남겨 두면서 사람의 마음 밭에 빼곡히 채워진 번뇌도 이렇게 풀을 뽑듯이 뽑아낼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에 호미질을 멈추고 서성였다.

그 사람을 만난 건 서성거림을 멈추고 다시 풀을 뽑고 있을 때다.
“들어가 봐도 되나요?”
친근감이 느껴지는 따스한 음성으로 내 작업실에 들어가도 되는가를 물었다.
“네 볼 것도 없는데”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에 작업 공간을 두다보니 볼거리가 있는가 싶어서 간혹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지만 남들에게 보여줄 만한 것을 만들어 내는 재주가 없는 나로서는 뭔가를 기대하고 들어오는 사람에게는 실망감을 주기 일쑤다. 그 날도 그랬다. 분명 볼 것이 없어서 잠시 둘러보다가 나올 텐데 하면서도 그의 음성에서 느낀 친근감에 차 한 잔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따라 들어갔다.
"차 한 잔 하실래요?"
"아니요. 그냥 조금만 앉아 있다 갈게요. 너무 좋아서요" 한다. 그래도 나는 찻물을 끓여 홍차 한잔을 내어 놓았다 처음 만난 사람과 마주앉아 차를 마신다는 것은 자칫하면 어색하기 마련이다 무슨 대화로 이 어색함을 풀어갈까 망설이고 있는데 다 마신 찻잔을 바라보고 있던 그 사람이 말했다.
"이렇게 차를 주셨는데 그 보답으로 시 한편을 읊어드리고 싶은데 괜찮을 까요?"
순간 그 자리의 어색함은 사라지고 난 작게 손뼉을 쳤다. 빈 찻잔을 손에 쥐고 무슨 시를 읊을까 기다리는 짧은 시간, 괜히 내 심장이 콩닥거렸다.

그 시를 쓴 시인의 마음을 읽어 내려가 듯 두 편의 아름다운 시를 읊어주던 사람, 그 사람 머리에는 한 권 분량의 시가 들어 있다고 한다. 오랜 시간 동안 숲에 대한 이야기만 듣다보면 지루해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 사람들에게 시를 들려주면 너무 좋아 한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 그 사람의 모습이 그대로 숲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언덕을 내려가는 그 사람을 하얀 망초꽃이 배웅하는 여름 밤 낯선 사람이 남기고 간 詩향으로 잠시나마 번민은 사라지고 내 속 뜰은 고요하고 넉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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