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로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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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2.09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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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천강정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항상 미래가 불안해 보인다.특히 세대간의 갈등과 의사소통의 부재가 많은 듯하다.젊은 세대들은 기성세대들에 대한 상대적 피해의식과 현실에서의 청년실업 등 사회적 환경의 어려움을 몸소 겪고 있다보니 이기적으로 비칠 수도 있다.그러나, 미래를 짊어질 젊은 층의 의식이 살아있음을 요즘 많이 느낀다.

작년 말, 갑작스런 북한의 연평도 포격 당시 단 10분만에 우리 군은 전열을 정비한 후 대응 포사격을 실시하였다.이는 어느 한 미군 장성도 대단히 용맹스럽다고 칭찬한 바 있다.예상과는 달리 포격 이후 오히려 해병대 지원병이 훨씬 늘었다고 한다.인기 텔런트 현빈 씨가 28세로 가득찬 나이에 해병대에 지원했다고 하여 국민을 힘나게 하고 있다.우리 젊은이들이 기회주의와 황금만능주의에만 빠져 있지 않고, 국가와 사회를 위해 기꺼이 젊음을 바치는 모습은 우리의 미래가 밝음을 의미한다.

-이에 장인환 義士 이야기를 전해 드리고자 한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 이후 고종황제의 외교고문인 미국인 스티븐스(Stevens)는 미국에 가서 기자회견을 열어 <일제의 통치만이 한국을 발전시킨다.>는 발언을 여러차레 하였고, 신문에 “조선국왕은 무능하고, 관리는 백성을 학대하고, 백성은 어리석어 일본의 보호가 필요하다”고 기고를 하여 미주 한인사회를 분노케 하였다.사실 스티븐스는 이등박문의 하수인으로서 고종의 외교고문을 맡고 있었던 것이다.이에 32세의 장인환 의사(義士)는 1908년 3월 2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페리역 시계탑 앞에서 스티븐스에게 리벌버 권총 3발을 쏘았고, 이틀 후 총을 맞은 그는 사망했다.장인환 의사는 2급 살인죄가 적용되어 25년형을 받고 샌프란시스코의 샌퀜틴 교도소에서 복역 중에 모범수로 선정되어 10년을 복역한 후 1919년 1월 가석방되었다.장 의사는 일시 귀국하여 1927년 평양에서 결혼을 하였으나, 일제의 강압에 못이겨 홀로 미국으로 건너가 세탁소를 운영하였지만 지독한 우울증으로 외롭게 살다가 1930년 5월 22일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다. 우리정부는 1975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고, 그의 유해를 국립묘지에 안장하였다.

-끝으로 장인환의사의 재판중 어록(語錄)을 올린다.
그가 만약 살아있다면
또다시 수백만의 한국인은 죽음을 당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먼저 세상을 떠난 동포의 넋을 달래고,
동포와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그에게 총을 발사한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죽을 장소와 때가 언제인지를 아는 사람이 할 일입니다.
그를 죽이고 나도 죽으면
그것이 나와 내 나라의 영광이며 행복인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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