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식(戴冠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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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식(戴冠式)
  • 한북신문
  • 승인 2023.05.15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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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조선시대의 임금은 모두 28명인데 이들은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눈물의 즉위식을 치렀다.

이 특별한 경우라고 따로 구분하는 것은 전왕(前王)이나 부왕(父王)이 살아생전에 왕위를 선양한 경우 예컨대 태종이 세종에게 또는 단종이 세조에게 고종이 순종에게 자리를 물려주거나 중종이나 인조처럼 반정(反正)이라는 이름의 쿠테타로 집권한 일을 말하는 것으로 이 경우에는 모두 성대한 즉위의식을 거행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부왕(父王)의 죽음과 그 장례절차 중에 왕위에 오르게 되어 의식자체도 간단하였지만 왕위 계승자가 지극한 슬픔을 몸으로 표현하여야 했기에 비통한 분위기 속에 진행되기 마련이었다.

급히 구장복(九章服)을 갖추고 법전(法殿) 한 구석이나 입구에서 떠밀리듯이 간단히 즉위교서를 읽고 신하들의 산호(山呼)를 받는 것으로 의식을 마치게 된다.

국왕이 왕관을 머리에 쓰는 이른바 대관(戴冠)은 옛 로마에서 황제가 즉위할 때 월계관을 머리에 쓴 이래 유럽의 국왕 즉위식에서 행해진 의례이며 특히 절대군주시대에는 국력을 대외에 과시하는 용도로 호화로운 왕관이 제작되어 각종 보석으로 장식되기 마련이었고 국왕의 예복 역시 사치의 극한을 달리게 되었다.

장수(長壽) 군주 엘리자베스 2세의 뒤를 이어 65년에 이르는 오랜 세월 왕세자 자리를 지켜온 그녀의 아들이 <찰스 3세>라는 칭호로 영국 국왕의 자리에 오르는 공식 대관식을 치렀다.

화제는 대관식에 착용한 그의 위세품들이었다. 머리에 쓴 ‘성 에드워드왕관’은 각종 보석 444개가 장식된 2.23kg의 순금관이며 1207년 에드워드 1세의 명으로 제작되어 700여 년 동안 국왕대관식에 사용된 ‘대관식 의자(The Coronation Chair)’에 앉아 정교회의 예루살렘 총대주교 테오필로스 3세가 축성한 성유를 바르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물한 예수의 실제십자가 조각이 안에 장식된 장미 수정 원석이 포함된 은색 <웨일스 십자가>를 들게 되며 <골든 스테이트 코치(Gold State Coach)>라는 눈부신 황금마차를 타게 된다.

그러나 왕위에 오르는 지금도 논란이 많은 그의 성격과 함께 영국이 처한 대내외적인 위기는 국왕으로서의 그의 앞날에 심각한 도전으로 다가 선다.

심지어는 많은 런던시민들이 ‘그는 나의 왕이 아니다(He is Not My King!)’라는 팻말을 들고 그의 즉위식장 주변에서 항의 집회를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이에 따라 그는 왕으로서 “국민을 섬기는 자가 되겠다”는 통치 이념을 공식적으로 제시하였지만 불만세력을 잠재우기에는 아직 역부족인 듯하다.

지금 이 시점에서 국왕제도가 더 이상 필요한 것인가에 대하여 더욱 거세지는 논란 역시 그가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왕관을 쓰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라는 유명한 격언은 비단 즉위하는 영국국왕 찰스3세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영국국왕의 대관식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정치인들 역시 자신들이 쓰고 있는 관의 무게를 다시 한 번 느끼고 점검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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