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그래야만 했을까?
상태바
꼭 그래야만 했을까?
  • 한북신문
  • 승인 2023.03.15 15: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우리의 전통문화에는 생화(生花)를 잘라 장식하는 일 즉 <꽃꽂이>라는 분야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당연히 꽃을 사용하는 의식은 있었다. 수연(壽宴)을 비롯한 축하자리에 고임상을 차려 올릴 때 혹은 망자를 운구하거나 종교적으로 특별한 행사를 치를 때 그 자리를 특별하게 꽃을 사용하였지만 이때는 생화가 아닌 종이로 만든 꽃인 지화(紙花)를 사용하였고 이 종이꽃을 만들 줄 아는 기술자는 특별한 대접을 받으며 불려 다니곤 하였다.

이처럼 생화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잘라낸 꽃은 죽은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특히 축하의 잔치자리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겼을 뿐 아니라 꽃을 자르는 행위 그 자체를 달가이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때 대학 새내기들의 필독서로 간주되었던 에드워드 카(E. H, Carr)는 그의 명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하였다. 이는 역사를 이미 지나버려 잊혀져도 되고 버려져도 되는 과거가 아닌 현재의 나를 향하여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곧 다가설 미래를 향한 중요한 동인(動因)과 변인(變因)으로 작동하고 있는 삶의 중요한 터전으로 규정한 것이고 이로써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상황규정이 가능한 것이다.

무어라고 부르든 그 명칭과는 관계없이 요즈음 젊은 세대들이 기존세대를 폄하하는 말 중에 <꼰대>가 있고 <라때>라는 말이 있다 “나 때에는 말이지…”로 시작되는 본인들만의 과거사바탕으로 후배들에게 강요하는 <훈계>를 단호히 거부하는 멸칭이다. 그리고 이 멸칭에는 “그래서 어쩌라고?”하는 심각한 세대 단절의식이 포함되어 있다.

바로 며칠 전 <삼일항거 기념일>에 굳이 일장기를 자신의 아파트 베란다에 게양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항의하는 이웃들에게 자신이 한국인이긴 하지만 “한국이 너무 너무 싫어서 그랬다”는 어이없는 이유와 함께 이는 자신의 표현의 영역이니 상관하거나 괴롭히지 말라는 당당한 항변을 덧붙이고 있다.

결국 부모가 어떤 고생을 하며 자신을 키웠는지를 모르니까 자립해야 할 때가 되고서도 그 부모에게 고마워 하기는커녕 부모의 관심과 걱정을 쓸데없는 간섭이라 인식하는 사춘기적 유아성에서 못 벗어나는 것이고, 어떤 고난을 극복하며 공산 침략세력으로부터 이 나라의 자유와 정체성을 지켜냈는지를 ‘전혀 모르니까’ 여전한 북의 만행과 폭거를 묵인하는 것이고 이 나라를 되찾아 이민족의 압제에서 겨레를 구출하려는 대의에 목숨을 바치고 헌신한 선열의 그 눈물겨운 희생과 간고한 투쟁을 ‘모르니까’ 그 숭고한 민족저항의 날에 일장기를 게양하는 부끄러운 짓을 서슴치 않고 자행하게 되는 것이다.

동원한 영화 ‘명량’의 맨 끝부분 비하인드 장면에는 배 맨 밑에서 전투 내내 두 손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노를 저은 격군들이 퍼질러 앉아 나누는 대화가 나온다. 가슴에 깊이 남은 그 대사는 “우리가 이렇게 개 고생한 거 우리 후손들이 알랑가 몰라?”였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