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편추방, 민주라는 이름으로 망친 민주
상태바
도편추방, 민주라는 이름으로 망친 민주
  • 한북신문
  • 승인 2022.10.22 0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논설주간 홍정덕 교수
논설주간 홍정덕 교수

민주주의의 발흥지라고 일컬어지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테네>에서의 일이다.

권력을 장악한 귀족층이 해상무역을 통하여 부를 축적한 일부 부유층과 결탁하여 전횡을 일삼아 아테네가 혼란에 휩싸이자 개혁정치인 드라콘(Dracon)이 범죄를 강력히 처벌하는 내용의 성문법(成文法)을 만들지만 오히려 시민들의 더 큰 불만을 야기하자 솔론(Solon)은 <토지소유상한제>와 <400인 시민회>, <배심재판원>을 만들어 양측을 조정하려했지만 갈등은 더욱 심화될 뿐이었다.

결국 누군가 강제력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어 강권주의자 페이시스트라토스가 권력을 장악하며 참주(僭主), 즉 독재자가 되는데 그의 강권정치 아래 비로소 아테네는 혼란이 수습되면서 경제 부흥과 문화 발전이 이루어지고 민중의 좋은 평판을 얻었다. 그

런데 그의 아들 히피아스가 아버지의 이 독재권을 계승하며 횡포를 부리다가 클레이스테네스(Cleisthenes)에게 타도되었다. 권력을 잡은 그는 아테네를 혈연 부락 대신 10개의 지역(Demos)으로 개편하고 이 지역민의 투표를 통해 500명의 <민회원>을 선출하여 이들에게 입법, 행정, 사법을 주관하게 하는 ‘시민의 정치’ 이른바 <민주정> 체제를 확립하게 된다. 동시에 그는 독재정치(참주정)의 부활을 막기 위해 <도편추방>이라는 방어 장치를 설정하였다.

매년 2월 아고라에서 열리는 시민 전체회의에서 “어쩌면 참주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의 이름을 무작위로 <항아리 조각-(도편)>에 적는 투표를 시행하고 여기에서 6000표를 얻으면 사실 여부에 관계없이 무조건 10년간 국외로 추방하는 제도였다. 일리가 있고 당위성도 있어 보이지만 이는 결국 아테네를 ‘바보 민주주의’, 이른바 중우정치(衆愚政治)로 이끄는 커다란 문이었다.

이 제도는 바로 정적을 추방하는 간편한 수단으로 활용되는데 이 도편추방을 통해 ‘플라타이아이 싸움’에서 페르시아를 격파하고 델로스동맹을 결성한 아리스티데스, 에우뤼메돈 강에서 페르시아의 함대와 군대를 격멸한 키몬, 살라미스해전에서 페르시아 해군을 전멸시켜 페르시아전쟁을 승리로 이끈 테미스토클레스, 페리클레스가 주도하는 아테네 제국 정책을 반대하였던 역사가 투키디데스등이 국외로 추방되었다.

동일 필체로 쓰여진 여러 개의 도편이 발견되는 것은 결국 상당수의 표가 매수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하였지만 더 큰 문제는 무책임하고 정파적인 시민을 향한 선동이었다. 기원전 416년 전쟁의 방향을 놓고 니키아스와 알키비아데스가 대책 없이 대립하자 히페르볼루스가 도편투표를 추진했는데 니키아스와 알키비아데스가 야합해서 오히려 히페르볼루스가 추방되는 참사가 벌어지고 결국 이 제도는 시행 70년 만에 종결되고 만다.

민중의 뜻을 온전히 정치에 반영하는 것이 민주정의 핵심인 것은 맞다. 그러나 그 민중의 뜻이 정도에서 벗어난 사론이라면 이로써 전체의 대의자체가 붕괴되고 만다.

<김건희특검법>에 공식적으로 반대한 <시대전환>의 조정훈 의원은 하루 종일 수없이 걸려오는 항의 전화와 항의 문자에 업무가 마비되고 의원실이 마치 ‘콜센터’처럼 되었다고 말한다. 심지어는 만나서 토론하자는 제안에도 항의자들은 단 한명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원칙으로 운영된다. 그러나 ‘다수’가 민주주의 자체는 결코 아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