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부모에게서 어찌 이런 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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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모에게서 어찌 이런 아들이
  • 한북신문
  • 승인 2022.09.18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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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논설주간 홍정덕 교수
논설주간 홍정덕 교수

1939년 상해 조선인회 회장 이갑녕이 인솔하는 만선시찰단이 일정대로 경성에 도착하여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를 면담하는 자리에는 이 시찰단에 동승한 특이한 인물 두 명이 함께 하고 있었다.

한국 침략의 설계자이며 원흉인 이토오 히로부미를 총살한 항일의 전설 안중근 의사의 실질적인 외아들 안준생과 그의 여동생 안현생의 남편 황일청이었다. 총독 면담 이후 만선시찰단 단원은 전원이 중국 상해로 돌아가지만 안준생은 홀로 남아 별도의 스케줄을 이어간다. 그는 조선총독부 외사부장 마쓰지와 다쓰오, 촉탁(통역) 아이바 기요시, 안중근 의사 재판 당시 통역을 담당했던 소노키 스에키와 함께 박문사를 방문하게 된다.

‘박문사(博文寺)’는 사찰의 이름에 나타나는 것처럼 흉적 이등박문의 명복을 빈다는 명목으로 일제가 우리나라의 궁궐 건물에서 자재를 뜯어내 지은 소위 보리사였고, 안준생은 이곳에서 이등박문의 명복을 비는 참배를 진행하게 된다. 그의 망동은 이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 다음날 그는 이토의 아들 이토 분키치와 만나 다시 박문사를 공동참배하며 “죽은 아버지의 죄를 내가 대신 속죄하고 전력으로 보국의 정성을 다하고 싶다.

이토 분키치에게는 아버지를 대신 깊이 사죄드린다”는 극한의 망언을 공표하게 된다. 당연히 일제는 이 사실을 각종 친일 언론을 총출동하여 대서특필하며 ‘조선통치의 위대한 전환사’라느니 ‘부처의 은혜로 맺은 내선일체’”라느니 하며 떠들어 댔고 이를 접한 백범선생은 비분강개한 나머지 그를 민족반역자로 처형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된다.

안중근 열사 의거 순국 후 그의 남은 가족들은 처참한 박해에 시달려야 했다. 안준생의 형 안분도는 8살 어린 나이에 일제에 의해 길거리에서 독살되었고 나머지 가족들은 감시와 협박 속에 생활 자체가 어려운 극심한 궁핍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그러하다하여도 아버지의 빛나는 업적을 한순간에 지우는 그런 망동을 어찌 안중근의 아들이 저지를 수 있었을까? 당시 독립지사들 사이에서는 “호랑이가 개를 낳았다”는 탄식이 공공연히 떠돌았다고 한다.

전 광복회장 김 아무개씨의 비리가 감사를 통해 밝혀지며 온 장안이 다 뒤숭숭하다. 그는 가장 선명한 민족주의자로 나서서 목청껏 역사 광복을 외치는 동시에 자기의 정치지향과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을 그야말로 가차 없이 난도질로 폄훼하더니 그 뒤에 숨어 기껏 한다는 짓이 나랏돈 훔쳐 챙기는 추접스런 공금횡령이었단다.

독립지사 유자녀의 학업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각종 특혜를 받아 설립한 카페의 운영 수입을 고스란히 사적 용도로 유용하고 광복회의 사업으로 출판비, 건축비를 과다 책정, 지급하였다가 몰래 되돌려 감추기도 모자라 법인카드를 대놓고 부정사용하는 등 훔친 돈의 액수가 무려 8억 원을 넘는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독립운동가 선대의 이름을 팔아 훔친 그 돈을 목욕비, 안마비, 가발 이용료 등 그야말로 기도차지 않는 더럽고 하찮은 용도로 마구 탕진하였다는 사실이다. 부끄럽고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라를 되찾겠다는 독립지사들의 생애를 모두 다 바친 그 눈물겨운 헌신을 한 바탕 분탕질로 구렁텅이에 처넣는 그 아들들의 망동 앞에 아직도 참된 광복과 민족정기의 회복은 아득하고 멀게 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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