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하지만 오래된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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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하지만 오래된 인연
  • 한북신문
  • 승인 2022.04.1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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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논설주간 홍정덕
논설주간 홍정덕

조선시대를 이해하는 중요한 정치적 코드 중에 당쟁(黨爭)이 있다.

당쟁의 양상은 시대의 정치적 환경을 따라 다양하게 변천되어 가지만 그 중 가장 치열하게 전개된 붕당 간 대립은 숙종 말년부터 시작된 노론과 소론 간의 다툼이었다. 정치적으로는 물론 성리학적으로도 개혁적인 담론을 지향한 소론과 기존의 질서와 체제를 옹호하였던 노론의 갈등은 때때로 상대당의 중요 인사들을 대량으로 죽음으로 몰아가는 극단적인 양상을 띄고 치열하게 전개된다.

그런데 이 두 당파의 갈등은 사실 사소한 사안에서 시작되었다. 소중화(小中華)를 지향하며 주자의 정통을 자부하던 송시열은 자신과 대립하던 남인 윤휴에 대하여 동정하는 자신의 오랜 친구 윤선거(尹宣擧)에 대하여 못마땅한 심사를 가지고 있었는데 마침 그 윤선거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들이며 자신이 총애하는 제자 윤증(尹拯)이 아버지 윤선거의 신도비문을 지어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그러나 윤선거에 대한 감정이 남아있던 그는 끝내 비문을 짓지 않고 윤증이 보낸 윤선거의 행장(行狀)을 그대로 성의 없이 문구만 일부 고쳐 보내게 된다. 그리고 옛 우정을 생각해 의미 있는 비문을 지어달라는 거듭되는 제자 윤증의 부탁을 단호히 거절하자 마침내 윤증은 자신의 스승 송시열에 대한 비난을 펼치며 논쟁을 벌이게 된다. 이 논쟁을 회니시비(懷尼是非)라 하고 이 논쟁이 정계로 확대되면서 서인은 결국 소론과 노론으로 분열하게 되는 것이다.

인조반정 공신 박정(朴炡)은 자신에게 허여하는 사패지로 농경지로서는 별 가치가 없으나 경치가 수려한 수락산 아래 골짜기를 선택하였고 그의 아들 박세당은 40세 되던 해 송시열 일당의 횡포에 질려 정계를 은퇴하고 부친의 사패지인 장암동 골짜기에 은퇴하게 된다.

윤증에게는 누이동생이 있었는데 그녀는 박정의 아들 박세후에게 출가하였으나 남편 박세후가 불과 23세의 나이로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동생 박세당(朴世堂)의 작은 아들 박태보를 양자로 입양하게 된다.

이른바 소론의 맹장이며 인현왕후를 옹호하다가 죽은 충신인 그 박태보의 영혼을 모신 곳이 바로 장암동의 노강서원이다. 그러니 윤증과 박세당은 서로 사돈이 되며 동시에 윤증은 박세당의 아들 박태보의 외숙이 된다.

새로이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에 당선된 윤석열 당선인은 논산 파평 윤씨의 35대 손이다.

의정부에 대선 유세를 왔던 윤석열 당선인은 의정부 장암동의 서계 종택 뒤편 언덕에 반남 박씨 문중이 내세우는 자신의 선대 고모의 아들 박태보가 묻혀있는 것을 알기는 하였을까? 부디 개혁과 통합에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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