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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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의 비극
  • 한북신문
  • 승인 2021.10.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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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가장 위격(位格)이 높은 나무는 은행나무이다. 이는 옛날 공자(孔子)가 사수(泗洙)의 은행나무 그늘에서 그 제자들을 가르쳤던 고사(故事)에 유래하여 그곳을 행단(杏壇)이라 불렀고 이에서 유래하여 성균관(成均館), 향교(鄕校), 서원(書院)의 뜰에 반드시라고해도 좋을 만큼 은행나무를 심었기 때문이다.

현재도 이들 옛 교육관련 시설에는 모두 수백 년의 오랜 수령(樹齡)을 헤아리는 은행나무가 심겨져 관리되고 있다.

은행나무는 고생대 페름기부터 지구상에 나타나며 초기에는 여러 종이 존재하였으나 쥐라기부터 쇠퇴하기 시작한 이래 현재는 1문 1강 1목 1과 1속 1종만 존재하는 즉 식물 분류상 단 한 종이 남아있는 특이한 식물이다. 암수가 구분되어 있고 열매 안의 핵과(核果)는 진해(鎭咳), 거담(去痰), 활열(活熱)작용을 하며, 잎 또는 잎의 추출액은 혈전(血栓) 용해제, 말초 순환기 장애 치료, 기억력 회복, 고혈압 예방 등에 특효약으로 사용하는 약성이 강한 식물이기도 하다.

은행나무는 수형(樹形)이 아름답고 크게 자라는데다 무엇보다 가을이 되면 그 잎새가 노란빛으로 곱게 물들어 이로써 가을 정취를 대표하는 나무 중의 하나로 사랑받았다. 여고시절 곱게 물든 은행잎 한두 장을 책갈피에 끼워 두던 추억이 가을마다 은행잎을 보면 새로워질 터이다.

용문산의 은행나무는 지금도 절 보다 그 은행나무를 보러가는 사람들이 더 많을 정도로 유명하고 덕수궁이나 경복궁 돌담길의 물든 은행나무 역시 서울을 대표하는 가을 경관으로 연인들은 물론 외국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서울의 흥취 중 하나이다.

의정부에도 거리 곳곳에 은행나무가 가로수로 조성되어 가을이면 물든 잎새가 가을의 정취를 깊이 느끼게 해주었다.

문제는 낙엽철에 쓸어도 쓸어도 계속하여 거리에 떨어져 쌓이는 잎새와 열매에서 풍기는 고약한 냄새였다. 미화원들은 긴 막대를 휘둘러 낙엽을 털어내며 고역을 치르고 길가에 떨어진 열매를 밟고 버스에 오르면 버스 안에 퍼지는 악취가 적지 않은 민폐로 작용하였던 것이다. 자연스레 은행나무는 가로수로 실격판정을 받아 가차 없이 베어지는 신세가 되었다.

이제 언젠가는 곱게 물든 은행나무를 거리에서 찾아보기 어렵게 될 것이고 물든 은행 잎새를 주어 책갈피에 꼽던 정취와 함께 떨어진 열매를 “은행을 턴다”라는 우스개와 함께 다투어 거둬가던 모습도 동시에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은행나무는 오래 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본줄기가 죽거나 베어내도 맹아(萌芽)가 돋아나는 그야말로 미친 생명력과 함께 열대(熱帶)와 한대(寒帶)만 아니면 어디든 자라는 적응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뛰어난 약성을 지니고 목재로서도 가로수로서도 목질(木質)과 수형(樹形)이 뛰어나다. 이 좋은 나무를 이대로 강제 도태시킬 밖에 다른 방법은 없을까?

산림청이 은행나무의 성(性) 감별 DNA 분석법을 개발해서 이제는 1년생 나무의 암수 구별이 가능하다니 열매를 맺지 않는 수나무만 골라서 가로수로 식재하는 방법도 있을 테고 잎새는 약재로 수거하는 방법도 있을 테다.

어찌하던 방법을 강구하여 아름답게 물든 은행나무 가로수 길을 걷는 낭만을 오래 누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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