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했던 그 결혼식
상태바
특별했던 그 결혼식
  • 한북신문
  • 승인 2021.08.15 06: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1791년 정조(正祖) 15년 6월2일자 <실록>에는 특이한 기사 하나가 올라있다.

오부에서 혼사를 시켜야 할 남녀의 별단을 올렸는데 모두 281인이었다.

유학 신덕빈의 딸이 유학 김희집과 혼사 말이 오가니 특별히 호조 판서 조정진과 선혜청 제조 이병모에게 혼인 차비를 갖추고 잔치를 열어 혼례를 이뤄 줄 것을 명하고 내각에 소속된 관리 중 글을 잘 짓는 사람에게 전(傳)을 지어 그 일을 기록하도록 명하였다.

상황은 이랬다. 흉년이 들자 혼수비용을 마련하지 못한 집안에서 이미 혼기가 넘는 자녀들을 혼인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정조는 해당 집안에 나라에서 돈과 포목을 지급하여 결혼시키고 그 결과를 매달 자신에게 직접 보고하라는 엄명을 내렸다. 한성부의 관원들이 총출동하여 일을 추진한 결과 조사된 혼인 대상자 281명 중 남녀 각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결혼에 성공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도 끝내 결혼하지 못한 그 남녀는 나름대로 사정이 따로 있었다.

28살 노총각 김희집은 서자이며 가난하다는 이유로 약혼자에게 파혼 당해 상처가 깊고 21살 노처녀 신씨 역시 몹시 가난하여 혼수를 장만할 길이 없는데다 이런 그녀를 며느리로 삼겠다는 집안도 없는 딱한 상황이었다.

정조는 그 둘을 결혼시키면 되겠다 작정하고 왕명으로 다음과 같이 지시한다.

“각각 두 집을 위하여 혼서를 대신 지으라. 무릇 채단·폐백·관·신·비녀·가락지·치마·저고리·이불·요·대우·반이·주료·병이·역막·병장·문연·갑촉·향해·장렴·지분 등 세세한 것과 안마·도례의 호위하는 것과 의식 차리는 제구를 모두 하사하니 왕의 말을 믿게 하자는 것이다. 마음을 다하여 판비하라.”

결국 이들은 정조 15년 6월12일 국가가 준비한 성대한 혼례를 치르고 부부가 되었다. 마침내 정조의 국가 결혼프로젝트가 완성된 것이다.

○… 안부(雁夫)는 앞에 있고 유온(유모)은 뒤에 있고 청사초롱과 홍사초롱 쌍쌍이 앞에서 인도하고 경조(京兆) 오부의 서리·조례는 좌우에 옹호하여 의절이 엄숙하였다.

신씨 문에 다 달아 말에서 내려 전안하고 초례석에 들어서니 신씨가 선명하게 단장하여 취교(물총새의 깃 모양으로 만든 부인의 수식)·금전(금비녀)·궤보요(부인의 머리나 목에 걸면 흔들리는 장신구)를 갖추고 연꽃무늬로 수놓은 홍치마를 입고 주락선으로 얼굴을 가리고 공손히 교배하니 질서 정연하여 어그러짐이 없다.

이미 충분히 나이 들고 가난하지도 않은데 결혼하지 않으려는 해괴한 풍조가 이 시대를 휩쓸고 있다.

국가가 적극적으로 더 적극적으로 나서라. 정조처럼!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