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휴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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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휴머니즘
  • 한북신문
  • 승인 2021.07.23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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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랑 논설위원·경복대 세무회계과 교수

“「로봇승려」도 해탈에 이를 수 있을까?” 며칠 전 모 일간지의 인공지능관련 기사의 제목인데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2017년 한국불교학회가 연 학술대회에서 ‘인공지능 로봇의 해탈 가능성’이라는 주제가 논의된 적이 있다고 한다.

“아무도 죽지 않는 세상이 온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트랜스휴머니즘의 현재와 미래를 안내하는 모 책자의 제목이기도 하다.

1982년 미국의 TIME지가 그 해를 대표하는 인물로 인간이 아닌 컴퓨터를 뽑아 표지모델 문구를 ‘People of the Year’가 아닌 ‘Machine of the Year’라는 획기적 제목을 붙인지 40여년이 되어오고 있다. 바야흐로, 옛날에는 꿈도 꾸지 못할 로봇기계에의 감정이입 가능성을 넘어 그와 관련된 휴머니즘에 대해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정말로, 로봇기계가 인공지능을 넘어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

한 예를 들어보자. 미래의 인간 빅터(Victor)는 30대로 보이지만 사실 그는 현재 250살이며, 아마도 영원히 죽지 않을지도 모른다. 60살 즈음에 심장병을 심하게 앓았지만 이제는 인공심장 덕분에 마라톤을 가볍게 뛸 수 있을 정도로 힘과 활기가 넘치며 사고로 한쪽 팔을 잃었지만 잃기 전보다 훨씬 더 강해진 그의 팔을 인공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쪽 눈에 낀 콘택트렌즈를 통해 자기 몸과 주변 환경에 대한 정보를 수시로 전송 받는데 수명이 다한 망막세포를 컴퓨터 칩으로 교체하지 않았다면 벌써 오래전에 장님이 되었을 것이다. 250살이나 된 빅터는 젊을 때보다 더 건강하여 병원에 갈 일이 없다.

수십억 개의 나노로봇이 몸속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질병이나 노화로 손상된 세포를 수리하고 암세포는 눈에 띄는 대로 즉시 없애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빅터의 심장과 망막은 누구 것인가? 심장에 문제가 생기면 아프다고 해야 하나, 고장 났다고 해야 하나? 빅터는 인간인가, 사이보그인가?

지금으로서는 생각하기조차 끔찍(?)한 일 일수도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인간강화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든, 우리는 지금도 기술생리적 진화와 게놈을 연구하여 생명을 연장하고 심부 뇌자극과 이식형 제세동기를 통해 인공장치와 신체를 통합시키는 등 초기단계의 트랜스휴머니즘은 어디서든 이미 진행 중이며, 우리는 이미 그것들을 아주 적극적으로 일상생활에 끌어들이고 있다.

프란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처럼 이 트랜스휴머니즘을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상’이라고 비판하는 등 걱정하는 미래학자들도 많지만 컴퓨터 과학자인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이 지적했듯 융합기술의 발전은 어떤 한계점을 넘으면 기하급수적인 변화를 수반한다는 사실은 준비 안 된 인류에게 재앙이 될 수도 있음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나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준비는 한국은 물론 세계에서도 큰 이슈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의 강화는 어디까지 가능할까? 건강하게 오랜 수명을 누린 후 우리는 스스로 인공장기의 작동을 멈출 수 있을까? 인간 강화기술 적용에 불평등은 없을까? 인공장기를 통해 수집된 정보는 누가 관리해야 하나?

사람이 인간으로 남을지 혼종 생물체가 될지 아님 뇌와 기억만 로봇의 몸체에 이식하여 불멸의 존재가 될지는 현재로서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이 길이 먼 훗날 지구상의 인류에게 바람직한지 아닌지, 그리고 통제관리가 가능하다면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음미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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