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몰래 몰래 듣던 그 해외 방송
상태바
그 시절 몰래 몰래 듣던 그 해외 방송
  • 한북신문
  • 승인 2021.01.24 0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유럽 최강이라고 자부하던 프랑스군이 독일 기갑부대와 급강하 폭격기의 전격작전으로 불과 6주 만에 전면 붕괴되고 유럽 전선에 파견되었던 영국군이 어선과 나룻배까지 동원된 처절한 철수 작전으로 덩케르크로부터 도주한 1940년 육군 소장으로 겨우 일선 사단장이었던 샤를르 드골이 영국군을 따라 영국으로 도망쳐 초라한 임시정부를 겨우 꾸리고 항전을 호소하였을 때 우방 영국은 물론 전체 프랑스 국민들도 그를 거들떠보지 조차 않았다.

프랑스는 1차 대전의 영웅 페땅 원수를 수반으로 하는 비시정권을 출발시켜 프랑스 남부의 자치권을 인정받는 조건으로 독일에 항복하고 독일의 점령과 수탈, 지배를 감수하게 된다. 드골은 <라디오 런던>이라는 방송을 통해 끊임없이 항전을 촉구하였지만 그의 호소에 응하여 그의 휘하 <자유 프랑스>군에 모인 항전 병력은 불과 1만도 채 되지 않았고 그 누구도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천덕꾸러기 망명조직에 불과하였다. 그럼에도 그는 나치 치하의 국민들을 향해 끊임없이 항전을 촉구하는 방송을 계속했다.

그러나 나치의 겁박과 늑탈이 더욱 강화되며 1942년 그나마 유지되던 남부프랑스 마저 독일군이 점령하자 드골의 호소는 드이어 점차 설득력을 가지게 된다. 국내에서는 레지스탕스의 저항이 조직화되고 해외 식민지들이 차드를 선두로 차례차례 모두 자유 프랑스의 주권 아래로 귀속되어 가며 드골의 지휘를 받는 병력은 45만으로 증가한다. 북아프리카에 이어 프랑스 본토로 진공한 자유 프랑스군은 마침내 1944년 르끄렐르 장군의 지휘 아래 파리를 수복하였고 드골은 파리 시민 모두의 열광적인 환호 아래 저항군의 선두에 서서 당당히 개선문으로 승리의 행진을 하게 된다.

“여기 워싱턴에서 이승만이가 말합니다.”로 시작되는 해외방송도 비록 고가였던 단파라디오를 가진 극히 일부분의 국민만 청취가 가능했어도 그가 전하는 전쟁 상황은 일제하 지식인들에게 바른 소식과 함께 광복의 희망을 주는 벅찬 메시지였고 극동방송이 송출하는 복음방송은 공산치하의 중국 기독교인들에게 소망을 전하는 유일한 힘의 원천이었다.

이제는 탈북민 국회의원이 선출되고 그들이 가지고 온 북한의 문화와 음식이 우리 사회의 한 트렌드로 자리 잡는 이 시대, 그들 탈북민들의 고향 이탈 동기에는 거의 대부분 남한 대한민국의 방송, 가요, 드라마가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 남쪽에서 전하는 메시지들이 그들의 삶의 지향을 절망에서 희망으로 바꾸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북한 당국은 남쪽의 이 희망 메시지를 차단하고 막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고 심지어는 공개 총살까지 진행한다는 이야기는 이미 세계인 모두가 아는 인권 유린의 대표적 사례가 되고 있다.

거대 여당은 압도적인 표로 대북전단 살포를 범죄로 규정하고 이를 처벌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접경지역에 긴장을 조성하며 북한 인권 증진에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2018년 판문점 선언 등 남북 합의상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한다는 규정에 어긋난다는 이유, 그리고 접경지역 우리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는 이유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전단을 살포하거나 대북확성기 방송 등 남북합의서 위반 행위를 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는 법을 만든 것이다. 그렇게 무리하게라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할 정도로 그게 맞는 건가?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