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국헌신 군인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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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국헌신 군인본분
  • 한북신문
  • 승인 2020.10.09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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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안중근 열사는 1910년 3월26일 오전 10시 여순 감옥 사형장에서 순국하여 우리 민족의 영원한 별로 찬란히 승화하였다. 사형일 하루 전인 3월25일 밤 의사(義士)를 찾아 온 일본군 헌병 지바 도시치(千葉十七) 상병은 “내일 사형이 집행될 것 같다”며 조용히 그러나 안타깝고 간절한 마음으로 자신에게도 “글씨 한 점을 써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한다. 자신의 조국 일본을 근대화한 최대의 공신 이등박문을 죽인 조선인이었지만 법정에 서서 당당하게 “나는 대한국의 의병(義兵) 중장(中將)으로서 나라의 국권을 되찾기 위한 전쟁에서 적군의 수뇌를 사살하였으니 일본은 나를 살인범으로 재판할 권리가 없다”고 당당히 항변하는 그의 모습과 옥중에서 죽음을 앞두고서 조차 의연하고 평온한 자세에 감복하던 중 형 집행이 임박하자 의사를 존경하는 마음과 헤어지는 안타까움을 한 폭의 유묵으로나마 달래보려는 충정이었다.

안 의사는 감옥에 들어 온 이래 묵묵히 자신을 경호하며 공판정을 왕래하던 그의 수고와 추위를 걱정하며 털양말을 몰래 넣어 줄 정도로 자신을 생각하는 그의 진심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의 소청을 흔쾌히 받아들여 내일 글씨를 주겠다고 허락한다.

3월26일 비가 내리는 아침 기도와 식사를 마친 의사에게 지바가 찾아오자 그에게 먹을 갈게한 후 세로 137㎝, 가로 32.8㎝의 명주천에 당당하고 힘찬 필치로 ‘爲國獻身軍人本分(위국헌신군인본분) 여덟 자를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 왼쪽 아래편에 ‘경술 3월 여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근배’라 쓰고 그 밑에 안중근 자신의 수장을 찍었다. 글씨를 마친 것이 9시30분, 31세의 장렬한 생애를 마치기 30분 전이었다.

27살이던 지바는 의사의 순국 이후 곧바로 군에서 자원 제대하여 고향으로 돌아가 의사의 유묵을 자기 집 제단에 모시고 평생 때맞추어 공경히 제사를 올리며 의사를 추모하였고 자신의 죽음에 즈음하여는 조에게 이 유묵울 성심껏 모시고 제사를 그치지 않도록 신신 당부하였다고 한다.

모든 예술 작품은 그 작품의 제작 동기와 배경을 먼저 이해하여야 그 작품이 지닌 가치를 보다 명확히 알게 되는 법이다. 이 작품은 안중근 의사의 최후작, 그것도 순국 불과 30분 전에 쓰여진 것이며 자신의 적국 일본의 군인에게 써준 것이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함께 나누었던 교감, 그 따뜻한 마음만을 함께 나누어 가지며 헤어지는 절절한 심정이 고백되어 있다.

탈영병의 혐의를 받고 있는 고위층의 자녀와 그 고위층을 변호하고 감쌀 목적 따위로 함부로 들먹일 그런 글씨가 아니다. 너는 군인으로서 조국을 위해 정말 최선을 다했는가를 묻는 준엄한 질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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