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의 중국몽(中國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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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의 중국몽(中國夢)
  • 한북신문
  • 승인 2020.03.04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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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규 논설위원·여행작가

 

지난해 12월31일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중국의 미흡한 대응은 중국의 공산주의 체제와 의료문화 수준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동안 우리는 동북공정, 사드배치와 한한령을 겪어오면서 중국이 가까이 하거나 멀리 해서도 안 되는 나라임을 확인했다. 그런데도 중국을 의식해 눈치 봐가며 일대일로에 참여하고 친중 정책을 유지하는 것은 중국의 근현대 역사에 대한 무지에 기인한다.

19C 중엽 청나라는 영국과 치른 아편전쟁으로 난진조약(1842)을 맺고 5개의 항구 등 문호를 개방하였다. 이후 발생한 대기근으로 홍수전이 태평천국의 난을 일으키자 영국, 프랑스 연합군이 텐진, 이어 베이징을 점령하여 원명원을 소각하고 베이징조약(1860)을 맺었다.

동치제는 양무운동으로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근대공업화, 군대를 강화하여 부국강병하는 동치중흥을 가져왔지만 광서제의 변법자강 개혁(1898)이 서태후에 의해 좌절됨으로써 중단되었다. 더욱이 의화단의 난이 일어나자 피해 입은 8개국의 연합군이 베이징을 점령하여 폭동을 진압하였다.

신축조약(1901) 때 맺은 베이징 의정서에 의해 열강이 베이징에 군대를 주둔함으로써 청은 반식민지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신해혁명, 1, 2차 국공합작, 그리고 항일전쟁 종전 후 내전에서 승리한 마오쩌둥이 중국을 통일하였다.

한국이 6.25전쟁의 폐허를 딛고 경제성장을 거듭하는 동안 중국은 대약진 운동, 문화혁명 등 실정을 거듭해 왔다.

1980년대 와서 덩샤오핑이 선전특구를 개방하였으나 천안문사태로 고립되자 한국과 수교하였다.

그리하여 단기간에 경제성장을 하고 군사력을 증강시켰지만 이러한 급격한 발전은 정치, 문화, 의료 등 다른 분야와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지방과의 빈부격차를 늘렸다.

중국은 우리와 비슷한 근대화 과정을 거쳤지만 1949년 건국 이후 시종일관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해 왔다.

우한 실험실에서 발생한 코로나의 위험을 은폐하다 확산된 피해는 거짓선동, 은폐, 모략을 일삼는 공산당의 낡은 사고방식에서 비롯되었다.

마오쩌둥이 홍위병을 앞세워 봉건구습 타파를 외치며 중국 곳곳에 있는 문화유적을 파괴했지만 정치적 사고는 지금껏 문화혁명 당시의 낡은 봉건 구습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도 모르고 경제, 군사력을 앞세워 인접국을 무시하고 세계의 패권국가가 되겠다는 시진핑의 목표가 허망한 꿈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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