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훈장을 받은 일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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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훈장을 받은 일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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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2.28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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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민국 국가 수립에 뚜렷한 공을 세웠거나 국기(國基)를 다지는 데 뚜렷한 공적이 있는 사람에게 건국훈장을 수여한다.
건국훈장을 받은 대부분의 사람은 독립투쟁을 했던 사람들이다. 이 중에는 나라의 독립항쟁을 적극 지원하였던 외국인들도 포함된다. 장개석 중화민국 총통이나 스코필드 박사처럼 그들은 자신들의 모국이 아닌 대한민국의 광복에 적극 참여하였고 때로는 비난과 손해를 감수하여야 했다.
그런데 이들 외국인 건국훈장 수훈자들 중에 일본인들이 있다. 그들은 엄혹한 일제의 조선통치에 의연 반대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조선인들의 항쟁에 참여하여 뚜렷한 공적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그 중의 한 분이 후세 다츠지(布施辰治)’이다. 1880년에 태어나 1953년에 사망하였으니 그는 자신의 생애 중에 대한제국의 멸망과 대한민국의 광복을 모두 목격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1902년에 메이지 대학을 졸업하고 사법관 시보(현재의 검사)가 되어 우쓰노미야 지검에 부임한 이래 압박받는 일본의 천민(部落民)과 조선, 대만 등 일제의 강점 아래에 있는 현지인들의 인권과 그들의 정치적 권리를 위하여 적극 투쟁하였다.
그는 2.8 독립선언의 주역인 최팔용, 송계백, 의열단원으로 일본황궁의 니쥬바시에 폭탄을 던진 김지섭의사, 1926년에는 천황가 암살을 기획한 이른바 대역사건의 모의로 체포된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를 적극 변호하였고 관동대지진의 조선인 학살에 대한 항의, 동양척식회사의 토지조사 비판 등 일제의 만행에 적극 항쟁하여 결국 1932년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하고 투옥되기까지 하였다.
또 다른 일본인 건국훈장 수훈자는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라는 일본 여성이다. 본인 자신이 불우한 가계(家系)에서 태어났고 당시 경상도 문경에 거주하는 고모의 양녀로 입양되어서도 여전히 차별 속에 자라나는 동시에 문경 현지에서 조선에 대한 일제의 잔혹한 침탈과 억압을 체험한 그녀는 조선인 경기고등학교 사범과 재학 중 3·1만세운동에 참여한 혐의로 퇴학을 당하고 그 해 일본으로 건너가 세이소쿠가쿠엔 고등학교에서 신문배달 등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업을 유지하던 조선인 박열(朴烈)을 만나 그의 항일, 무정부주의에 깊히 공감하게 된다.
1924불령사를 조직하여 반일 활동을 하던 중 관동대지진이 발생하였고 가네코 후미코는 박열과 함께 일본 천황을 암살하려는 계획을 진행하다가 대역죄로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녀는 옥중에서 박열과 결혼하지만 이내 사망하여 현재 시댁인 상주에 묻혀있다.
이처럼 일제강점기에 식민지 조선을 사랑하고 조선의 독립을 위해 한 생을 바친 좋은 일본인과 겨레를 배반하고 일생의 안락을 추구한 악질 친일파 나쁜 조선인이 있었다. 그 상황은 지금 오늘에도 역시 마찬가지다.
턱도 없는 명분으로 한국으로의 수출을 억제하는 아베정권의 폭주에 맞서는 <No Japan> 캠페인이 한참이다. 우리 모두는 힘을 모아 극일을 통한 경제주권확립에 기어이 성공하여야 하겠다.
그러나 혹여 극일이라는 모멘텀이 우리 모두를 <일본인=나쁜 사람들>이라는 획일된 사고에로의 함몰이나 유일한 이데올로기로 몰아가는 어리석음은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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