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리성과 유구국의 평화
상태바
슈리성과 유구국의 평화
  • 관리자
  • 승인 2019.12.14 05: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현규 논설위원·여행작가

지난 1031일 새벽 정전(세이덴)에서 발생한 화재로 오키나와 슈리성이 전소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슈리성은 왕조시대에 예의를 중요시하고 평화를 사랑해온 오키나와(유구국)의 왕궁이었다.
유구국은 중계무역으로 번영했던 국가로 우리나라와는 고려 말(1389)에서 조선조(1871)까지 교류해 왔다. 고려사절요에 의하면 유구국은 남산, 중산, 북산 등 삼산왕조시대 때 중산왕 찰도가 1389, 1391년 고려에 사신을, 그리고 1392년 태조원년 조선에 사신을 파견하여 남방 특산물을 바쳤다. 1429년 중산의 쇼하시(尙巴志)가 남산왕조를 병합하고 유구국을 건국한 이후에도 우리나라와의 교류는 지속되었다.
하지만 임진왜란 때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사망을 명나라에 전해준 것을 이유로 1609년 일본의 침입을 받았다. 이후 1879년 메이지 정부때 일본의 오키나와현으로 편입되어 쇼타이(尙泰)왕이 슈리성을 비우고 일본에 끌려가 도쿄의 후작으로 책봉 받으면서 왕조가 폐지되었다.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군은 슈리성 지하에 방공호를 파고 수도사령부호를 설치하였다. 이 때문에 19454~630일까지 미군의 집중폭격을 받아 슈리성이 잿더미가 되었다. 당시 전주민의 1/412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희생되는 참화를 입었을 정도로 그 피해가 컸다.
1972년 미국이 오키나와를 반환하자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 복귀 20주년 기념으로 왕궁이었던 슈리성을 복원하였고 2002년에는 슈리성터와 구스쿠() 및 관련 유적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당시 복원된 슈리성이 전소되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평화를 지향해온 유구국이 대한제국처럼 군사적으로 저항도 못하고 합병된 이후 전쟁의 참화를 겪게된 것을 되새겨 보아야 한다.
최근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 중·러 폭격기와 신형전투기가 한국방공식별 구역을 거침없이 휘젓고 다니는데 정부가 동맹국과 우방과의 군사적 협력없이 말로만 부르짖는 평화가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린다.

만약 우리가 진정으로 평화를 원하고 지키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이념논쟁을 그치고 지금 동북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군사적 위협이라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