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의 딸에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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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신의 딸에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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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3.06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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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주 논설위원·글과생각 대표

최근 서지현 검사의 인터뷰를 봤다. 여러 분야에서 일고 있는 ‘me too’ 캠페인의 연장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이와 유사한 뉴스들이 방송되고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가해자를 탓한다.

마치 그들의 딸들에게는 아무 상관없는, 남들에게나 일어나는 특별한 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얼마 전 동창모임에서는 총장님 및 여러분들과 학교의 교육에 대해 대화를 했다. 굳이 오늘에까지 여자학교를 따로 운영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이런 이유로 지금의 후배들이 어떤 불이익이나 문제를 갖게 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하는 목소리였다. 나 역시도 현대사회에서 굳이 여자학교를 따로 구분해 교육할 이유가 없다고 재학 당시에는 생각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여중, 여고, 여대, 대학원까지 여대를 나온 입장이라 그 필요성에 대해 고민하고 경험할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이 시작되자 세상 곳곳 불공정한 상황들의 연속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웠다.

그전까지 나의 능력이나 자질에 대한 고민은 했지만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감수해야 할 영역이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모든 일에 있어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 있을 뿐이지 남자가 할 일과 여자가 할 일이 있다 생각해본 적이 없다.

책상을 옮기고 망치질할 때 대신해줄 남학생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으니까.

그러나 사회에서는 왜 여직원으로 따로 성별을 구분하여 불리는지, 왜 프리젠테이션은 그 여직원이 아니라 다른 직원이 와서 할 것이라 여기는지, 왜 승진이나 사회적 성공이나 사회문제에 그 여직원은 관심 없을 거라 여기는지, 왜 같은 상황에서 그 여직원은 배려라는 이유로 배제되어야 하는지, 왜 불합리한 부분을 말하면 안 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칭찬이라고 듣는 말이 겨우, ‘여자가 이런 것도 해요?’라든다 다른 여직원과 다르다였다.

무엇을 해도 이대출신 같지 않다, 혹은 이대출신 같다는 꼬리표가 붙었다. 아무래도 학교의 특성상 불합리에 대한 민감도가 높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졸업 후 사회생활에서 발생하는 부당함에 더 민감하고 또 반응 및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행동에도 더 적극적이라 소위 튀는 이대출신이 되기 일쑤다.

사회생활초반부터 최대 관건은 다른 직원보다 모든 순간에서 오래 버티기와 견디기의 연장이었던 것 같다.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으로 불리는 모든 장면에서도 대수롭지 않게 받아 넘기지 않으면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비난을 듣고 그렇지 않으면 이직을 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이다.

그 전에 부당함을 알리고 항의를 하느냐 마느냐의 옵션이 있을 정도지만 종국엔 그 비난과 불이익도 고스란히 피해자가 떠안게 된다는 반복적인 학습의 결과로 침묵을 선택하게 된다. 애초 사회초년생에게 그런 일이 발생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누구와 상의하고 해결해야 하는지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어 시간만 흘려보내며 숨어 다니는 것이 고작이라 이런 행동을 경험자가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서검사와 가해자를 모두 알고 있는 검사로부터 듣는다. 또 그와 유사한 사건이 검찰 내부에서 계속 고발되고 있다는 말도 들었다. 어느 누가 들어도 피해자를 옹호하고 지지해야 할 것 같은데 정작 검찰내부에서 그런 움직임이 없다는 말을 듣는다. 같은 단어라도 어순과 맥락을 달리 전하면 동일한 말이 되지 않음을 우리는 안다. 그리고 나의 이해와 관련되어 있을 경우, 쉬이 내 이익을 내려놓기 어려움도 안다. 어느 일방이 내부정치를 잘 하고 있다는 느낌과 함께 이런 방식으로 우리 사회의 불합리에 대한 민감도를 둔감하게 만드는 프레임과 시스템을 공고히 해왔고 또 하고 있음을 다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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