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평창(平昌)!
상태바
아아, 평창(平昌)!
  • 관리자
  • 승인 2018.02.04 11: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한국 대학생(koreanischer student)이 세계의 건각들을 가볍게 물리쳤습니다. 이 한국인(der Koreaner) 은 아시아의 에너지로 타는 듯한 태양의 열기를 뚫고 거리의 딱딱한 돌위를 지나 뛰었습니다. 그가 이제 트랙의 마지막 직선 코스를 달리고 있습니다. 우승자 이 막 결승선을 통과합니다‘(독일역사박물관 독일방송기록보관실 자료)

193689일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손기정이 1등으로 스타디움으로 들어왔을 때 이를 중계했던 장내 아나운서의 멘트이다.

스타디움 안으로 달려온 손기정은 장내 트랙을 한 바퀴 마저 돌며 마라톤 42.195kmk의 마지막을 채웠다. 운집한 관객들은 그의 마지막 질주를 숨죽여 지켜보았다. 결승선 통과 후 손기정은 만세도 하지 않았고 환호도 부르지 않았다. 그저 레이스 내내 자신을 괴롭혔던 운동화를 벗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대로 고개를 숙인 채 탈의실로 퇴장했다. 올림픽의 꽃인 마라톤의 금메달리스트가 보일 수 있는 태도는 전혀 아니었다.

시상대의 손기정과 남승룡도 마찬가지였다. 은메달을 딴 하퍼의 해맑음과 대조적으로 손기정과 남승룡은 우울해 보였다. 스타디움에 일장기가 오르고 일본 국가 기마가요가 흘러나올 때 월계관을 쓴 손기정과 남승룡은 더욱 고개를 숙였다. 손기정은 월계수 나무로 입고 있던 옷에 새겨진 일장기를 가렸다. 손기정은 의기소침했고 슬퍼 보였다.

손기정[孫基禎] - 1936 베를린올림픽의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인물한국사)

19451027일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자유해방경축 전국종합경기대회>에 손기정은 태극기를 든 기수로 선두로 입장한다. 그는 그 개막식 내내 울고 있었다. 태극기! 그의 손에 들려진 태극기 그 깃발이 체육 영웅 손기정을 울게 하였다. 그리고 전 국민이 따라 울었다.

19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이 폐막하던 89, 마라톤 결승선으로 주자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선두에 일본 대표 모리시타와 내내 각축하던 대한민국의 황영조가 선두였고 마침내 우승자가 되었다. 관중의 우레와 같은 환호성이 몬주익 경기장을 뒤덮었을 때 관중석 한 켠에서 조용히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한 사람이 있었다. 손기정이었다. 황영조의 가슴에 달린 태극기. 그리고 올림픽의 꽃으로 피어난 마라톤 우승자에 대한 시상식, 그 시상대 위로 높이 높이 오르는 태극기! 그 날은 손기정이 태극기 없이 우울하게 서럽게 시상대에 올랐던 1936년 마라톤 시상식과 같은 날짜, 89일이었다.

오늘은 내 국적을 찾은 날이야. 내가 노래에 소질있다면 운동장 한복판에서 우렁차게 불러보고 싶다.”

그는 그렇게 태극기 아래에 선 황영조의 등을 만지며 말했다. 평창 올림픽 개막식에 우리 선수들은 태극기 아닌 다른 깃발을 들고 입장 한단다! 폐막식에도 그리 한단다! 여자 아이스하키선수들도 가슴에 태극기가 아닌 다른 깃발을 달고 출전하고 메달을 따면 그 시상대 위에는 다른 깃발이 오른단다! 우리가 주최하는 올림픽, 전 세계가 참여하는 그 올림픽에 그래야 한단다! 그게 맞단다! 아아, 평창(平昌)!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