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의 땅이름-74)시북곡면(柴北谷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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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의 땅이름-74)시북곡면(柴北谷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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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1.04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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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추윤 논설위원·신한대 중앙도서관장

양주 시북곡면(柴北谷面)은 둔야면(芚夜面)과 합쳐서 양주군 시둔면(柴芚面)이 되고 이 시둔면이 양주면(楊洲面)으로 되었다가 면세 확장으로 의정부읍(議政府邑)을 거쳐서 의정부시(議政府市)가 되었다.

그래서 시북곡면의 역사적 내력을 아는 것은 의정부시의 근본을 파악하는 것이 된다. 1789년에 발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 책에는 동시북곡면(東柴北谷面)이 나오는데 소속 리는 일패리(一牌里) 하나이다.

지금의 면(面)과는 규모가 완전히 다른, 작은 시골 마을 정도 규모이다. 1914년 4월1일 일제가 전국행정구역을 통폐합하면서 시북면과 둔야면(芚夜面)이 합쳐지면서 양 면에서 한자씩 머리 글자를 따서 시둔면(柴芚面)이 되었다.

지역의 특성과는 상관없는 임의로 합성한 지명임을 알 수 있다. 이후 전국에서 현재 지명 유래를 해석하는데 엄청난 혼란과 억지유래가 속출하고 있다. 그리고 작은 리(里)들을 대폭 통폐합하여 대부분 3-4개 리를 합쳐서 1개의 리(里)로 통폐합하였다.

조선시대 시북면의 생활상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옛 자료에 전한다. 영조 35년 1월2일자 경기감사의 보고에 의하면 ‘양주 시북면의 김소사가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다. 황합과 해당 도에 명하여 휼전을 베풀라하였다.’ 이 지역 도봉산, 수락산, 천보산 일대 중랑천 변 녹양평 주변에 호랑이가 물을 먹으러 자주 내려왔음을 알 수 있다.

또 황성신문 1903년 9월14일자(광무 7년)에는 전 오위장 송일영의 도둑 맞은 기사가 아래와 같이 실려 있다. ‘음력 7월1일자 밤에 본인의 집에 도둑이 들어 물건을 훔쳐갔는데 이중에 양주 시북면의 한 섬 한마지기 논 반일 갈이와 포천 남면 내소리의 논 한섬 열네 마지기, 서면 동교리의 논 한 섬 여덟 마지기, 외서면 무림리의 논 석섬 열 여덟 마지기 사흘갈이의 토지문서를 잃었으니 이 문서를 팔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는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사기인줄 아실 것’ 양주군 시북면 귀락리에 사는 전 오위장 송일영 아룀. 시북면에 동시에 도둑들도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또 아내를 잃은 남편의 호소를 다룬 기사도 보인다. 황성신문 1910년 7월26일자에 보면, ‘양주군 시북면에 사는 이제학 씨의 아내 배씨는 얼마 전에 서울로 도주하여 현재 북부 관내에 숨어있다는 말이 있어 이씨가 이를 찾을 목적으로 서울로 올라와 해당 경찰서에 호소하였더라’라는 기사가 있다.

아마도 이 당시 시북면은 한양에서도 그리 멀지 않아 왕래하는데 그리 불편한 사항이 아닌 것 같다. 한양으로 도망가면 그 당시 경찰력이 미치기가 어렵기에 찾기가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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