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불가(不可不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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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불가(不可不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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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1.16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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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나라가 망해가던 대한제국 말기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망실한 채 이미 국권이 왜적에게 장악된 상태에서 회의라도 소집이 되면 대한제국의 대신들은 그 회의를 감시 감독하고자 임석한 일제 통감의 눈치를 보며 결국은 불가불가(不可不可)올시다라고 의견을 내어 놓기 일 수였다는 자조어린 우스개소리가 있다.

띄어쓰기가 없는 한자의 특성상 불가불가(不可不可)不可 不可로 해석하면 안돼 안돼가 되어 절대 반대 의사가 되지만 不可不 可로 읽으면 그리 할 수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라는 절대 찬성 동의가 되는 것이니 이는 사체(事體)에 대한 주견 자체가 없는 기회주의자의 극단적인 처세가 된다.

조선시대에 문과 대과에 장원하면 종6품관에 제수하고 차석 2명은 7품관에, 을과 합격자는 8품관, 그 외 병과 급제 23명은 9품관에 제수하는 것이 규정이었다. 그런데 이들 새로이 선거된 인재를 배치하는 부서는 청요직(淸要職)이라 별칭하였던 대간(臺諫), 즉 삼사(三司)에 배치되었으니 이들의 강직함을 활용하고자 함이었다. 삼사(三司)라 함은 사헌부(司憲府), 사간원(司諫院), 홍문관(弘文館)을 통칭하는 것으로 이는 주로 임금에게 바른 말을 직언하는 것을 임무로 하는 직책이었기 때문이다.

간언하는 자는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아야 했고 탈관(脫冠)은 물론 때로는 죽음조차도 불사(不辭)하는 강직함이 필요하였다.

아울러 바른 말을 해야 할 자리에서 사리를 먼저 계산하여 권력에 아부하는 발언이라도 하게 되면 그의 재능과 능력과 관계없이 그는 군자로서의 도리와 신자(臣子)로서의 의무를 모두 저버린 수준 이하의 소인배로 멸시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상관, 선배, 스승은 물론이거니와 지존인 국왕에게 그의 허물과 실수를 성토하는 일은 자신의 인생 자체를 걸어야하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고 그 자리에 과감히 나아간다는 것은 초인적인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런 인재가 귀하고 가치 있는 대접을 받았다.

새로운 정권이 출현하고 적폐를 청산하는 소중한 과업을 진행한다고 한다. 대통령의 서민적이고 소탈한 소통의 자세가 연일 화제에 오르고 그의 새로운 정치 스타일에 호감을 가진 결과 지지도는 70%를 상회하는 고공 행진을 지속하고 있다.

왜 지난 정권은 참담히 실패했을까. 왜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환호 속에 권좌에 오른 그녀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을까. 그 실패의 원인은 간언과 직언의 부재는 아니었을까.

지금, 환호와 지지의 함성 속에 있는 대통령에게 이건 아닙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강직한 충언의 지사(志士)가 필요한 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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