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의 실용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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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의 실용외교
  • 권원기
  • 승인 2017.04.24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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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원기 신한대 공법행정학과 교수


요즘 우리사회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DD)배치를 놓고 찬반논란이 뜨겁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들 간의 견해차이도 확연하다. 국가의 어떤 정책결정을 두고 이렇게 오랜 시일동안 논쟁이 벌어지는 일은 드문 일이다.

더 당혹스러운 것은 이미 사드배치를 위한 막바지 부지작업이 한창이고 배치될 사드포대도 이미 한국에 와 있음에도 논란이 계속된다는 사실이다. 대체로 어떤 결정이 막바지 실행에 옮겨질 때쯤이면 논란도 시들해지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사드 배치만큼은 논란이 시들지 않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사드배치가 미국을 비롯한 중국 러시아 일본 북한 등 국제적인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광해군 시기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길고 참혹했던 임진왜란이 막 끝나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여진족이 만주에 세운 후금이 명나라의 심장부인 북경을 압박하였다.


이에 명나라는 진압군을 파견하기로 하고 조선에도 군대파견을 요청했다. 당연히 조선에서는 명나라의 파병요구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광해군은 임진왜란의 후유증을 못 벗은 조선에 대한 사정을 들어 난색을 표명하였다.

일부 신하들이 광해군 의견에 동조했지만 대다수 신하들은 반대하였다. 심지어 광해군이 가장 신임했던 대북파 영수 이이첨마저 반대하였다.


광해군의 현실론과 신하들의 명분론을 둘러싼 논쟁은 몇날 며칠 지속되었다. 결국 광해군은 다수 의견인 신하들의 명분론에 밀려 파병을 결정하였다. 그러나 광해군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파병부대장인 강홍립으로부터 현지 사정을 속속들이 보고받으며 국제상황을 면밀히 검토하였다. 이에 명나라는 후금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간파하였다.

강홍립으로 하여금 후금에 투항하도록 하여 남은 군사의 희생을 막는 한편, 후금에게 조선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토록 하였다. 명과 후금의 전쟁에 조선이 끼어들 마음은 없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병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납득시킨 것이었다.

광해군의 실용외교는 정확한 국제상황 파악과 함께 자강에 힘을 쏟는데서 더욱 빛났다. 임진왜란 중, 부왕 선조가 명으로 망명 신청할 때 명은 단호히 거절하며, 오히려 일본의 앞잡이로 생각할 정도였다.


광해군이 집권하자 명은 각종 물자를 요구하며 수탈하였고, 나아가 조선을 직할령으로 삼고자 획책했다. 광해군은 국제정세가 냉혹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명나라도 후금도 결코 동지가 될 수 없고, 적 또한 될 수 없다는 것을 안 것이다.

국제관계에서 온전히 나라를 보전하려면 실용외교가 중요한 대안임을 분명히 인식하였다. 외교뿐만 아니라 내적으로도 성곽을 보수하고, 화포와 전차를 대량 제작하여 비축하며, 무과를 수시로 시행하여 우수 군사를 뽑아 훈련시켰다. 전쟁까지도 상정하여 할 수 있는 최선책을 시행한 것이었다.

광해군이라는 리더의 눈을 통해 오늘의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중요한 국가사안일수록 사전에 많은 논의를 거쳤다는 점이다. 반면에 우리의 사드배치에 따른 사전 논의가 거의 없었다는 점은 시대착오임이 분명하다.

둘째, 어떤 결정을 한 후에도 최선을 다해 정보를 탐지하고 나름대로 대안을 수립한 점이다. 반면에 지금은 사드배치 결정 후, 별다른 국제정세 탐지노력을 하지 않고 흑백논리식 찬반론만 난무한 실정이다.

셋째, 어떤 나라도 우리의 우방도 적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한 점이다. 수백 년 전에도 이러할진대 오늘의 우리는 여전히 특정 국가만을 의지하고 방위를 맡기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쓰라린 역사는 되풀이하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상황과 외부상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장기적인 안목에서 자립할 수 있는 방안을 차근차근 실행해야 한다. 네가 옳니 내가 옳니 하는 식의 논란은 공염불에 불과하며, 다시금 쓰라린 역사를 맞이할 수도 있다.
지금이라도 사드배치 등 여러 가지 난제를 끝장토론이라도 실시하여 최소한 국민적 이해를 구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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