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공정과 간도-서른세 번째 이야기) 간도가 우리땅인 이유-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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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과 간도-서른세 번째 이야기) 간도가 우리땅인 이유-16
  • 김현규
  • 승인 2016.12.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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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규 여행작가
4. 베이징 조약 이후 달라진 동북아 국제 정세
(러시아의 연해주 강탈)
우리가 약소국이 되어 식민지 지배를 받고, 해방 후 다시 분단을 겪게 된 것은 러시아의 등장과 일본이 근대국가로 성장한 것에 기인한다. 그러면 조선이 유럽의 소국이었던 러시아와 국경을 마주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러시아의 영토 확장과 관계가 있다.

980, 블라디미르 1(최근 푸틴이 그의 동상을 모스크바 시내에 세움)는 우크라이나 지역을 정복하고 키예프 공국을 세웠다. 이 나라는 13C 초 몽골의 침입을 받아 약 250년간 지배당한다. 그 후 1480년에 이르러, 이반 3세가 킵차크 한국으로부터 독립하여 모스크바 공국을 세운다.

러시아는 서, 남쪽이 유럽국가에 막혀 바다와 격리되어있다. 이로인해 해외 식민지 건설이 좌절되자 짜르 이반 4세는 1582, 돈카자크의 추장(원정대 용병대장) 예르막으로 하여금 우랄산맥을 넘어 시베리아로 진출을 시도하였다. 그리하여 시비르칸국(시베리아 지명이 유래됨)을 정복하고 1604, 오브 강변에 톰스크 등 도시를 건설하였다.

17C
초 성립된 로마노프 왕조는 죄수들을 시베리아에 유형을 보내 광산을 개발하였고 당시 값이 비쌌던 검은담비 등의 모피를 얻기 위해 바이칼을 지나 동진을 계속한다.

1648
, 러시아 탐험가 예로페이 하바로프는 아무르 강을 탐사하고 1649, 오호츠크 해에 이른다. 이것은 시비르칸국 멸망(1598) 후 러시아가 담비, 수달 등의 모피를 구하기 위해 가는 곳마다 동물들을 남획하며 얼마나 빠른 속도로 진군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1652
, 하바로프는 우수리 강과 아무르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아찬스크 도시를 건설하고 모피를 얻기 위해 마을을 약탈하였다. 이에 원주민이도움을 요청하자 청은 조선에 조총군 파견을 요청하였다.

효종은 1654년 변급, 1658년 신유의 조총군 부대를 흑룡강(아무르강)에 파견, 나선 정벌을 하였다. 신유의 북정록에는 2차 나선 정벌 때 그가 스테파노트 사령관이 이끄는 러시아군을 무찌른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1689, 러시아 표트르대제는 청의 강희제와 네르친스크 조약을 맺고 흥안령 북쪽 스타노보이 산맥을 경계로 국경을 정하였다. 1728, 캬흐타조약으로 남하가 좌절되자 러시아는 담비, 밍크, 수달 사냥을 위해 다시 동으로 진출, 캄차카 반도(수달 멸종시킴)와 쿠릴열도, 츄코트 반도와 베링해협, 그리고 알래스카(1741년 베링이 발견)에 이른다.

1847, 니콜라이 무라비예프 아무르스키가 동부 시베리아 총독이 되자 러시아는 중앙아시아 국가를 침략하는 등 본격적으로 남하하기 시작한다. 그는 태평천국의 난의 혼란을 틈타 1858, 청과 아이훈 조약을 맺었다.
<다음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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