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공정과 간도-스물두 번째 이야기)간도가 우리땅인 이유-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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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과 간도-스물두 번째 이야기)간도가 우리땅인 이유-6
  • 김현규
  • 승인 2016.06.22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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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규 여행작가

나단(일곱)산은 봉우리가 7개인 바위산이고 이판()령은 어미소가 팔려간 아기 송아지를 찾아 넘었다는 고개이고 동간()산은 지명이 종성(鐘城)이 되었다. 또한 아오지(검은 돌)에는 석탄이 생산되며 두만(豆漫:)강은 만개의 지류를 가진 강이며 주을(뜨거운 물)에는 온천이 있다.

뿐만아니라 북청여진비와 경원여진비, 그리고 여진 토성 등 여진 유적이 함경도 곳곳에 남아있다.
금나라 역사서<금사>를 읽어보면 여진족이 흰옷을 즐겨 입고 채소를 소금에 절여 김치를 만들어 먹었고 고구려인처럼 머리에 꿩의 깃털을 단 모자 조우관을 썼을 뿐만 아니라 데릴사위제 등 여진족 풍속이 부여, 고구려와 같은 점에 놀라게 한다.
뿐만 아니라 언어 또한 우리와 비슷하다.
18C중엽 종성에서 유배생활을 했던 윤창후의 저서 <수주적록>에 여진어 더투리(도토리)가 1599년 만주어 통일 후 투리로, 누륵이 누러로, 무커는 무커 그대로 무린은 모린, 부커는 만주어 보오로 변천되는 과정이 예시되어 있다.

여진족은 토토리묵을 즐겨 먹었는데 이것은 오늘날 주요음식이 되었고 또한 여진족 술 얼크에서(음식맛) 얼큰하다는 말이 유래되었다.

지금도 아리(산) , 아리랑(언덕), 옷, 마누라, 무(물), 나마리(나물), 치커리(천, 저고리), 생지(동물의피, 선지), 감투(모자), 사둔(친척, 사돈), 푸진(부인), 아마(아버지), 어마(어머니, 어마마마), 어미 등 여진어가 쓰이거나 변하여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한국어와 만주어가 같은 근원을 가진 알타이어족 퉁구스어파에 속하는 교착어로 분류한 핀란드 언어학자 구스타프 람스테드(1873~1950) 의 이론을 뒷받침 해준다.

한 영토 내에 사는 민족은 혼인등으로 피가 섞이면 단일민족이 되며 안섞이면 이민족(소수민족)으로 남는다.
한반도 남부의 말갈은 통일신라에, 북부함경도에 거주하던 여진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 우리 민족에 개국공신이나 사당패, 백정 등으로 동화되었다.

두만강유역 옛 옥저 땅에 살던 일부 야인 여진도 우리 민족과 혼인등으로 혈연, 지연, 문화적 공동체를 이루어 단일 민족이 되었다. 그러나 발해 멸망 이후 수도였던 영고탑을 중심의로 백두산, 두만강, 북쪽 지역에 할거하던 부여족의 한 갈래인 야인 여진을 완전히 통합하지 못하고 방치한 결과 언어와 풍속이 분리되었다.
그리고 이들이 국가를 이루면서 청(만주족)과 국경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다음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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