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공정과 간도-열 여덟번째 이야기) 간도가 우리땅인이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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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과 간도-열 여덟번째 이야기) 간도가 우리땅인이유-2
  • 김현규
  • 승인 2016.04.18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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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규 여행작가

맥족과 예족국가
삼국유사에 나오는 곰과 호랑이는 이를 숭배하였던 종족, 즉 예족과 맥족을 의미한다. 고조선은 예족과 맥족, 그리고 한반도 중부 이남의 한()족으로 이루어진 국가였다.

중국사서에 나오는 예맥조선은 이를 뜻한다. 맥족은 고구려, 백제로 곰을 숭배하였고 요동반도와 압록강 이남에 살았다. 이들은 다시 압록강 하류에 살았던 대수맥, 중류의 동가강 지류에 살았던 소수맥으로 나누어지는데 한반도 춘천(맥국수도 혹은 온조왕 때의 최씨 낙랑국 일부)까지가 그 영역이었다.

예족은 말갈계통의 종족으로 호수, , 해안가에 살며 수렵, 어로 생활을 하였던 선주민족이다. 이들은 부여, 옥저, 동예 등으로 호랑이를 숭배하였고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아 부족 국가 단계에 이르지 못하였다. 말갈 7부족 중 속말말갈이 부여지역에, 백산말갈이 두만강 하류의 옥저지역에 살았다.

옥저는 두만강 유역 북쪽에 살았던 북옥저와 두만강 남쪽에서 함경도 해안에 살았던 남옥저(동옥저)로 구분되는데 특산물은 담비가죽, 물고기, 소금, 삼베 등이었다. 동예(불내예)는 고대 말갈계 종족(인구 2만호)으로 호랑이를 숭배하였다. 이들은 함흥 이남에서 태백산맥아래 경북까지 해안과 내륙에 걸쳐 살았다. 강원도 문천군과 북천군 신창, 강릉에 주로 거주하였고 반어피(바다사자가죽), 호랑이 가죽(관자), 단궁, 과하마(果下馬)등이 특산물이었다.

삼국사기에 신라 초기 말갈(동예)의 침입을 받았다는 기록과 남해차차웅 연간에 북명주 사람이 예족의 인장을 발견하여 바쳤다는 기록이 이를 말해 주고 있다.

또한 삼국사기에 의하면 고구려는 추모가 졸본천에 도읍을 세울 때 인근 지역에 말갈 부락이 있어 이를 물리치고 건국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들 예족(말갈)은 신석기 시대부터 만주와 한반도에 거주했던 원시민족이다. 고조선 멸망 후 고구려의 추모가 즉위 10년 북옥저를 멸하였고 태조왕은 즉위 4(AD 56)동옥저를 복속시켰고 동예는 신라에 병합되었다. 이처럼 고구려(맥족)는 예족(부여,옥저)을 흡수하여 예맥국가가 되었다.

한편 한강 이남에 살던 한()(3한 및 소국들)은 백제와 신라에 병합되었다. 그런데 옥저, 동예는 부족을 이루어 할거하던 점과 생활풍속, 의복, 특산물 등이 만주족과 유사하다. 또한 삼국 통일 후 신문왕이 편성한 군대 9서당 중 흑금서당은 말갈족으로 구성된 군대였다. 고구려, 백제가 멸망하자 신라와 발해 남북국 시대로 대립한다. 발해는 고구려(맥계)가 예족(말갈)을 통일하고 세웠다.

926
년 발해가 멸망하자 만주지역에서 예족과 맥족이 사실상 분리되었다. 고구려계 발해왕족(맥족)은 고려에 귀화하거나 요동으로 이주하였고 말갈(예족)은 수도 상경용천부(영고탑) 부근에 부락을 이루어 살며 고려에 조공을 바쳤다. <다음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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