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안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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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안옵니까?
  • 홍정덕
  • 승인 2016.03.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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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덕 논설위원·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2008년 가을, 개성을 방문한 것은 아주 우연한 기회이기는 하였으나 그만큼 특별하였다.
한 때 남북관계가 화해 협력 모드에 접어들면서 정부는 정부대로 민간은 민간대로 각계 분야에서 북한에 무엇인가를 가져다주는 이른바 퍼주기가 성행하였고 이에 따른 북한 방문이 활성화되는가 싶더니 천안함 어뢰 폭침과 연평도 포격사건이 발생하면서 결국 남북의 교류가 다시 전면 중단되는 당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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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나눔 운동>이라는 단체에서는 경기도의 남북협력기금을 바탕으로 북한에 연탄을 지원하는 사업을 전개하여 왔는데 남북교류가 중단되면서 집행되던 예산의 잔여 부분을 집행하며 마지막으로 5만장의 연탄을 개성에 전달하는 행사에 민간 참여관으로 당시 이북5도청 경기사무소장이었던 필자가 동행하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었다.
출입 심사를 받고 우리는 개성 시내를 가로질러 봉담이라는 작은 역마을에 도착하기까지 약 1시간동안 연탄나눔행사를 진행하며 여러 차례 북한을 방문한 간사로부터 창밖의 풍경을 하나하나 자세히 들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모조리 베어 연료로 사용한 결과 나무는 물론 풀 한 포기 없는 개성의 민둥산들이었고 60년대에 멈추어선 추레한 모습의 개성의 뒷골목 민낯이었다. 거기에는 관광객은 결코 볼 수 없었던 진짜 북한의 모습, 처참한 가난과 빈곤의 속사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우리가 주는 연탄을 10장씩 배급받으면 그들은 이 연탄을 썰어 마치 번개탄 모양으로 나눈 뒤 이를 하루에 한 장씩 아껴가며 때거나 아니면 아예 가루로 부숴 진흙을 섞고 주먹 모양의 덩어리탄으로 만들어 서너 개씩 땐다는 이야기이며 개성공단에서 간식으로 지급한 초코파이를 숨겨서 가지고 나와 거기에 물을 부어 죽처럼 만들어 먹는데 그나마 이를 먹을 수 있는 집의 아이들은 포동포동 살이 오른다는 이야기, 휘발유의 질이 나빠 개성공단의 노동자들에게 제공되는 우리나라의 버스는 신형을 운행하지 못하고 유황성분을 태울 수 있는 초기 엔진이 장착된 오래된 구형 버스를 운행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창밖의 우울한 풍경을 더 실감나게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이 가슴 아팠다.
봉담역 노천 플랫폼에는 50명 가까운 남자들이 줄지어 앉은 채 기다리고 있다가 묵묵히 연탄을 내리기 시작하였다. 우리도 함께 작업을 거들었으나 1시간 남짓한 작업 시간 내내 우리는 인사 한마디를 건네고 나누지 못하였다. 경직되고 무거운 분위기의 작업이 마무리 될 무렵 자신을 인민위원장이라고 소개한 살집 오른 한 여인이 양손에 한 양동이씩 물을 들고 왔다.
찬물은 식수였고, 미지근한 물은 손을 닦는데 쓰란다. 우리가 한 대접씩 물을 마시고 손을 닦는 동안 하역 작업에 동원된 주민들은 다시 플랫폼 한 구석에 줄지어 앉아 있었다.
그들의 낡고, 빈약하고, 어둡던 옷차림, 그리고 그 옷차림보다 더 우울해 보이던 그들의 표정을 적어도 수억은 들었을 듯한 마을의 김일성 영생탑이 위압적으로 굽어보고 있었다.
개성공단 북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출경심사를 기다리는 내게 북한군 대좌 계급장을 어깨에 단 중년 장교가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제 안옵니까? 마지막입니까? 아 이거 큰일인데요, 우리 다 얼어 죽습니다.”
김정은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온 세계가 격앙하여 강력한 대북 제제에 나서고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북한 경제가 이제 곧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한 장의 연탄으로 닷새를 땐다던 개성주민의 팍팍하고 스산한 삶은 또 어째야 한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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