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공정과 간도-열 다섯번째 이야기)간도와 백두산 답사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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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과 간도-열 다섯번째 이야기)간도와 백두산 답사기3
  • 김현규
  • 승인 2016.03.03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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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규 여행작가



백두산 정상에는 산림경찰이 지키고 있어 태극기를 꽂을 수 없다. 중국 측에서는 우리가 백두산에 와서 이 산이 우리 땅임을 주장하여 그들을 자극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이전에 중국은 발해사를 연구해 왜곡하였고 산둥(山東)대 쉬더위안 교수는 1998년 그의 논문에서 성계비를 압록강, 두만강이 다 보이는 소백산에 세웠는데 조선인이 몰래 지금의 그 위치로 옮기고 돌과 흙더미로 축조했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지금의 정계비터를 기중으로 하면 간도는 분재의 소지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므로 억지주장을 한 것이다. 그러나 장군봉에서 1.5km, 천지에서 남동쪽 4km, 지점에 있는 이 비는 처으이 강점기에 우리에게 매우 불리하게 국겅선을 정한 조·청 경계비이다. 당시 조선 통역과이었던 김지남으 <북정록>의 답사결로를 봐도 소백산은 아니다.

1712515, 강희제의 명령으로 조선이 접반사 박권과 청나라의 오라총관 목극등이 만나 백두산에 올라갔다. 그런데 목극 등은 박권과 함경도 관찰사 이선부가 늙었다며 대신 역관 김용헌과 김경문, 접반사 군관 이의복을 데리고 백두산에 올라갔다. 그들은 송화강과 압록강의 분수령에 정계비를 세우고 물길이 불분명한 곳에 돌과 흙으로 담을 쌓았다. ·청 경계를 정한 다음 동행한 청의 화가가 지도를 그렸다.

그가 조선과 청에 제출한 지도를 보면 정계비가 세워진 송화강 지류인 토문강(오도백하 상류인 흑석하)은 두만강이 발원하는 백두산의 대각봉 보다 북쪽에 표기되어 있다. 즉 정계비에서 토문강은 2리인데 두만강 발원지인 소백산과는 100리나 떨어져있어 토문강이 국경선임이 분명하고 정상기의 동국지도 에도 토문강과 두만강이 다르게 표기되어 있다.

또한 1909년 통감부가 발행한 지도에도 요도백하가 토문강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요동지에 의하면 토문강은 송화강으로 흘러든다고 했으며, 조선의 자료에도 토문강은 두만강 북쪽에 있다고 쓰여 있다. 뿐만 아니라 1962년 10월 12일 체결된 조·중변계약에도 흑석구(오도백하:9호~10호 경계비 사이에 있음)가 토문강이라고 명시 하였다.

따라서 이 정계비에 의하면 우리 영토는 간도 및 연해주까지 포함된다. 그런데 정계비는 1931년 만주사변 때 일제에 의해 사라졌다. 지금은 백두산 서쪽에서 두만강 발원지까지 21개의 국경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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