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체제 확립과정과 통치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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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체제 확립과정과 통치 스타일
  • 조용만
  • 승인 2015.03.13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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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만 논설위원



2011년 12월17일 김정일이 갑자기 사망한 후에 집권한 북한 조선노동당 제1비서인 김정은의 통치기간이 벌써 만 3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김정은의 권력기반이 공고하지 못해 집단지도체제하에서 명의만 김정은 이름으로 발표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혹을 품기도 하였고 장성택이 실제로 권력을 장악하고 김정은은 허수아비일 것이라는 추측도 나돌았다.

그러나 이제는 저 너머 북한의 김정은 체제가 쉽게 무너질 것으로 예상하는 학자나 연구기관은 별로 없다. 그렇다면 김정은은 어떻게 권력기반을 다지고 어떤 통치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을까?

첫째, 김정일은 국방위원장이라는 직책을 앞세워 선군정치로 북한 주민들을 통제하면서 민간 관료들을 복종시키고 내치를 다지면서 북한체제를 안정화시켰다.

그러나 김정은은 조선 노동당 제1비서라는 직책을 더 강조하면서 군보다는 당의 조직을 더 활용하고 있다. 물론 노동당 조직의 주요자리는 군인들이 차지하고 있어 그 사람이 그 사람이지만 표면상으로는 당의 이름으로 북한을 통치하고 있는 점이 김정일과 다르다.

둘째,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의 자리를 절대로 침범하지 않고 아버지 바로 밑에 있는 자리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조선노동당 제1비서 등이 모두 아버지 김정일의 다음 직책이다.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자리를 신성시 하면서 그 자리를 대신하지 않는다는 충성심과 효심을 보이면서 혈통을 중요시함으로써 백두혈통이 대대손손 북한을 통치한다는 무언의 예시와 카리스마의 후광으로 북한체제를 공고히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셋째, 그러나 김정은의 권력공고화 과정은 김일성이나 김정일 때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일성은 반종파주의 명분으로 국내파를 숙청하고 8월 종파사건을 계기로 연안파와 소련파를 숙청한 다음, 결국에는 자신의 노선을 비판하는 직계파까지 숙청함으로써 일인독재체제를 완성하였다.

김일성은 아들 김정일에게 자리를 넘겨주기 위하여 동생 김영주와 측근세력 및 김정일 위협세력을 제거하고 1974년 당중앙위 제5기 8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일을 “당중앙”으로 호칭하고 6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1980년 제6차 당대회에서 대내외에 후계자임을 공식선언함으로써 순조로운 권력승계를 이루었고 김정일은 큰 무리 없이 북한을 장악하였다.

그러나 김정은은 2010년 9월 제3차 당대표자회의에서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오름으로써 공식 후계자가 되었고 1년 3개월 후에 김정일이 사망하자 대안이 없는 북한은 김정은을 “위대한 령도자”, “조선 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선포하였다.

그 후 원수 및 수령의 지위에 오른 김정은은 7개월 후인 2012년 7월에 조선인민군 총참모장 리영호를 숙청하고 2013년 12월에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함으로써 김정은 1인체제로 만든 후 황병서와 최룡해로 하여금 충성경쟁을 하게 함으로써 체제를 공고히 하고 있다.

이러한 김정은 권력체제 확립과정을 살펴보면 첫째, 당 및 국가기구의 공식 권위제도를 통한 정치적 결정을 이용하는 특징을 나타내었고

둘째, 신속한 권력엘리트의 구조조정과 공개처형 등을 통한 신속성과 무자비함을 보여 주었으며

셋째, 김일성의 이미지를 모방하고 인민생활 향상을 구가하며 인민친화적인 대중성을 표방하고 있고

넷째, 2012년 4월 인공위성 로켓발사 실패를 인정하고 이설주와의 애정과시 행각 등을 볼 때 공개성과 투명성을 강조하며 전문성과 실용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볼 때 김정은은 선대의 폐쇄적인 은둔의 정치보다는 세계적인 추세를 어느 정도 수용할 것으로 예측되나, 북한체제의 전통적인 강온양면정책, 화전양면 전술, 반미대결전, 핵공포전술, 속도전 및 공포정치는 계속 계승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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