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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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의회
  • 홍정덕
  • 승인 2013.09.13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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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덕 한북대학교 평생교육원 교무부장


영국의회의 정원은 646명이지만 벤치의 좌석은 602개뿐이다. 그러니 지정석이 있을 수가 없다. 국회에 중요안건이 상정되거나 수상의 중대 연설이라도 있는 날은 좌석이 모자라서 국회의원이라도 좌석을 잡지 못하고 통로나 계단에 앉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장방형 의사당의 중앙에 의장석이 있고 그 좌우에 각각 5열로 배치된 의석이 있어 의장이 바라보는 방향의 오른쪽이 여당석, 왼쪽이 야당석이며 그 좌석(벤치)의 앞줄에서 발언을 할 수 있다 상대방 의원이 발언하는 동안 이에 대해 질문하거나 야유할 수 있으나 회의장이 소란스러워 의원이 발언이 들리지 않을 정도가 되면 의장이 의장석에서 일어난다.

그러면 의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의 신분 여하에 관계없이 모두 정숙해야 한다. 만일 의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는데도 계속 발언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즉시 체포되어 의사당 시계탑 아래의 감옥에 회기가 끝날 때까지 구금되어 있어야 한다.

의회의 양당 의석(벤치)의 사이는 3m로 이는 칼을 뽑아 휘둘러도 상대방에 미치지 못하는 거리로서 의회 안에서 폭력을 인정하지 않는 중세 이래의 전통이다 의원은 회의석을 가로지르지 못하며 만일 양당의 좌석을 가르는 선을 고의로 넘어가면 이는 당적을 상대방의 당적으로 바꾸겠다는 의사표시가 된다.

의원상호간에 반드시 존칭을 붙여야하고 말은 의장을 상대로 해야 한다. “00선거구에서 선출되신 학식 있는 □□의원께서”와 같이 상대를 존중하는 형용사를 붙여서 말해야 하며 발언은 의장을 상대로 하게 되니 삿대질 같은 것도 절대로 할 수가 없다.

어떤 경우에도 상대방을 향하여 ‘거짓말쟁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없으며, 바보, 돼지, 강아지, 악당, 당나귀, 위선자, 비겁자, 바리새 인, 부패분자, 반역자 등도 사용할 수 없다. 금지된 용어를 사용하면 반칙으로 주의를 받게 되고 곧바로 취소하고 사과하지 않으면 제재를 받게 된다.

의원은 그 누구라도 의장의 양해 없이는 어떠한 경우에도 자리를 떠날 수 없다. 또 회의장에서 신문도 볼 수 없다. 발언준비를 위한 책자나 서신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활발한 토론과 핵심을 찌르는 질문, 품위있는 유머로 상대방을 제압하되 상대방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자신들의 의안(議案)에 적절히 반영하는 타협의 여유가 바로 영국의 의원이 지녀야할 기본 매너요 태도이다.

이처럼 엄격한 질서 안에서 영국의 의회 민주주의는 확립됐고 지금까지 유지돼 왔으며 세계 정치의 모범이 됐다. 의회의 결정과 그 결정에 참여하는 의원들이 국민의 존중과 지지를 받는 이유이다.

우리나라의 한 국회의원이 내란음모죄로 국회에서 체포되는 어이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 국회 현장에서는 팻말과 현수막이 난무하고 막말이 섞인 극한 반대 발언이 횡행했고

의원도 아닌 당대표가 의회에서 불법적인 단식 농성을 진행하는가 하면, 체포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난 후에도 국회 정원에서 수백 명의 당원들이 아우성을 치며 집회를 진행하고, 법원이 발급한 구인동의서를 가진 사법기관에서 그를 구인하려 하자 해당 정당의 조직원들이 막아서며 장장 한 시간의 난투극을 벌이는 사태가 발생했다.

질서를 만들고 그 질서 수호의 원천이 돼야 하는 국회를 서슴없이 난장판으로 만드는 사람들과 그를 제때에 제압하지 못하는 무능한 공권력, 한없이 추락하는 국회의 권위를 바라보는 우리 국민들의 심정은 착잡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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